790908
만 40
키 183cm, 떡 벌어진 어깨 덕에 옷빨 기가막히게 받을 것 같은데 하나님이 몸만 주시고 패션센스를 안 주셔서 종업원들 사이에서 요즘 베르사체남으로 불리운다. (애칭임) 베르사체 이전에는 구찌와 톰포드 그 사이 어드메 깊은 황천의 일수룩을 즐겨입었다. 스스로 귀티나는 얼굴이라 생각한다. 나이 탓인지 업무 마감이 다가올수록 다 뒤져가는 낯빛이 된다.
여유만만
스스로 세상에서 제일 웃긴줄 앎
자주 스스로가 젊다고 생각함
18년차 짬에서 우러나오는 공과 사 구분 바이브
종업원들에게 앞담 까여도 화내지 않는 넓은 아량
근데 다소 잔소리가 많은 세미 꼰대
프로헛소리꾼
아직 월드컵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2002년 여름. 베낭 하나 걸치고 올라탄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가 역사의 시발점이다. 석양은 빳빳한 전역증 뽕에 취해 세상 두려울 것이 없었고 길바닥 널린 것이 기회처럼 느껴졌다. 그 지긋지긋한 산골서 벗어난 것 만으로도 기뻤지만, 석양에게는 나름대로의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이태리 음식 배 터지게 먹어보기, 게임 되는 휴대폰 사기, 서울에 이 한 몸 뉘일 집 마련하기, 큰아버지 암 치료비로 휘청이는 집안 일으켜 세우기 등등. 석양은 내가 그 개 좆같은 군 복무도 버텼는데 그까짓 거 못 일구겠냔 패기 넘치는 마인드였지만 그 해 처음 맛본 피씨방과 스타크래프트 덕에 삼개월 후 말끔히 파산한다. 당장 월세 내기도 빠듯해 숙식 되는 일자리를 알아보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게 고시원 앞 어떤 노래빠 노예직이었다. 석양은 한 일 년만 대충 구르고 나올까 하는 마인드였다.
한 업소서 오래 머무르기보다도 각종 땜빵으로 이리저리 떠돈 역사가 길다. 최초 진상처리반 업무로 시작했으나 곧 정산 밑작업 등 운영보조 쪽으로 흘러들어갔다. 당시까지만 해도 엑셀 잘 쓰는 것이 능력이었다. 쩜오와 룸카페, 노래 주점의 매입매출 통합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고 각종 영업직무에도 손을 댔다. 여기까지가 대충 2008년. 그 다음 해 노래 주점 '딸기타운' 관리 부장으로 승진, 2017년 쩜오 '나인스퀘어' 관리 부장으로 이동한다. 현재도 시설 개보수 건이나 각종 정산 트러블, 단속, 신고 문제 등은 제 업장 아니더라도 발벗고 나서 도와주기로 이름나있다. 적당한 싸바싸바에 도가 튼 40살. 원체 쉼없이 돌아다니며 쿡쿡 찔러대는 터라 안면 안 튼 곳이 없고 밀린 카톡은 어느새 999+ 를 넘긴지 오래. 대충 의형제로 축구팀 두어개는 꾸리고도 남았단다. (자랑임)